성해나의 『혼모노』는 2025년 3월 창비에서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으로, 일곱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출간 직후부터 독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탄 이 책은 단편집으로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얻으며 하나의 독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집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지금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장면 속에 꺼내 놓는다.

줄거리
이 책은 장편이 아닌 소설집이므로, 줄거리는 책의 얼굴이라 할 표제작 「혼모노」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야기의 화자인 30년 차 박수무당 문수는 어느 날 자신이 모시던 신령 '장수할멈'이 곁을 떠났음을 깨닫는다. 그 무렵 앞집에는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무당 신애기가 이사를 오고, 그녀는 할멈이 이미 자신에게 왔다고 말한다. 평생 자신의 신앙이 진짜라고 믿어 온 문수에게 이는 믿음의 뿌리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세월이 쌓아 준 경력과 자부심은 어린 무당의 등장 앞에서 하루아침에 무력해진다. 문수의 눈에 신애기는 마치 할멈과 하나가 된 듯 보이기까지 하고, 신애기는 서슬 퍼런 독설로 그를 몰아세운다. 가짜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질투, 그리고 자존심이 뒤엉킨 가운데 문수는 결국 평생 모셔 온 할멈과 신애기 앞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맞서기로 결심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권한다.
배경과 설정
제목의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本物(ほんもの)를 음차한 말로, 한때 인터넷에서 진상이나 오타쿠를 조롱하는 신조어로도 쓰였다.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와 변질된 용법이 공존하는 이 단어 자체가 이미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상징한다. 여기에 가짜를 뜻하는 '니세모노'가 맞물리면서, 소설은 누가 진짜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표제작의 무대는 무속의 세계이지만, 이야기가 겨냥하는 곳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랜 경력을 지닌 이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젊은 신진 사이의 대립은 곧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과 겹쳐진다. 소설집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팬덤, 세대 갈등, 국가 정체성 등 동시대의 다양한 장면을 가로지르며 진정성과 위선이 교차하는 현실을 그려 낸다. 수록작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혼모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이다. 이 가운데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작가에게 2년 연속 젊은작가상을 안겨 주었고, 「스무드」는 '이 계절의 소설'과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되었다.
총평
『혼모노』를 읽으며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이야기의 흡인력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짧은 분량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와 상황을 선명하게 세우고,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다. 문장은 읽기 편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인물들의 말투와 습관, 세계의 디테일이 살아 있어 현실의 한 귀퉁이를 오려 온 듯한 생동감을 준다. 소설집이라는 형식이 대중적으로 외면받는다는 우려가 무색할 만큼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은 데에는 이처럼 재미와 문학성을 함께 갖춘 힘이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집의 미덕은 '진짜'를 쉽게 판정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표제작에서 문수는 한낱 가짜로 규정될 위기에 놓이지만, 소설은 신애기를 단순히 진짜로, 문수를 가짜로 나누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라는 말을 휘두르는 이들의 확신과 위선, 그 확신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불안을 함께 비춘다. 독자는 읽는 동안 문수를 비웃다가도 어느새 그의 처지에 이입하고, 신애기의 오만에 분노하다가도 그 이면의 허기를 보게 된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선이 결국 보는 사람의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이 과정이 소설의 서늘한 여운을 만든다.
또한 이 책은 지금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서 의미가 크다. 팬덤과 세대, 정체성처럼 오늘날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갈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설교하거나 편을 들지 않고, 인물의 입을 빌려 불편한 지점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래서 읽는 이는 소설 속 누군가를 손쉽게 비판하는 대신, 자신 역시 누군가를 진짜와 가짜로 나누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평단이 이 작가를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여는 이로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감과 문제의식 덕분일 것이다.
다만 소설집이라는 특성상 수록작마다 소재와 분위기가 다르고, 인물들의 날 선 말투와 거친 표현, 불편한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작품은 결말을 명확히 닫지 않고 독자에게 판단을 넘기기 때문에, 분명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다소 허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열린 결말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혼모노』는 재미와 질문을 함께 쥔 소설집이다. 책이 잘 읽히지 않아 독서가 막막한 사람에게는 부담 없이 시작할 좋은 입문서가 되고, 오랜 독자에게는 동시대 한국 소설의 현재를 확인할 만한 작품이다. 나는 과연 진짜인가, 그리고 내가 진짜라고 믿는 것은 정말 진짜인가. 이 책이 던지는 서늘한 물음을 한 번쯤 마주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