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제목만 보면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헬조선 비판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려낸 성장 소설에 가깝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계나는 2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일하며 그럭저럭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날 그녀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런데 한국에서는 행복할 수가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소설은 계나가 호주 브리즈번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낯선 땅에서 영어를 배우고, 청소일이나 식당 아르바이트 같은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노동을 하고, 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계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한국에 있을 때 느꼈던 경쟁과 서열, 과도한 노동 강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압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물론 호주 생활이 마냥 낭만적이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하며,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옛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계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한가?" 그리고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며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갑니다.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시선
이 작품이 발표된 2015년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한창 회자되던 시기였습니다. 청년 실업, 과도한 경쟁, 부동산 문제, 세대 갈등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던 때였죠. 장강명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관념적인 사회 비판이 아니라 한 개인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을 통해 문제를 드러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계나의 선택을 영웅적으로도, 그렇다고 회피적으로도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계나는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우유부단하며, 스스로도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독자는 계나를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인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한 소설은 저널리스트 출신인 장강명 작가 특유의 건조하고 담백한 문체로 쓰여 있습니다. 감상에 젖거나 과장된 수사를 늘어놓기보다는, 취재하듯 담담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방식이 오히려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입니다. 이 때문에 소설이지만 마치 실제 이민 수기를 읽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
이 소설은 2024년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배우 고아성이 주인공 계나 역을 맡았으며, 이 작품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원작 소설의 담담하고 솔직한 화법을 스크린으로 잘 옮겼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 계나가 호주로 떠나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뉴질랜드로 목적지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배경은 달라졌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는' 계나의 선택이라는 핵심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소설을 인상 깊게 읽으셨다면 영화도 함께 감상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원작과 각색이 어떻게 다른 결을 만들어내는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총평
『한국이 싫어서』는 제목만으로 오해받기 쉬운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해외 이민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에 살든 삶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다만 그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조금 더 맞는 환경, 조금 더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한 개인의 용기를 응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특별히 와닿는 지점은, 계나의 선택이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을 소설 내내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계나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뿐입니다. 이는 비단 이민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보편적인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 -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 사회는 나에게 맞는 곳인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 을 담담하게 던지는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입니다.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남기는 작품, 『한국이 싫어서』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