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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울에 풍덩』 줄거리, 배경과 설정, 총평

by charlottemj 2026. 10. 23.

 어떤 책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재은 작가의 『푸울에 풍덩』이 그러한 작품이다. 제2회 소원청소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청소년 소설로, 2026년 10월 소원나무에서 출간되었다. 1930년대 후반 경성을 배경으로 수영 선수를 꿈꾸는 열다섯 소녀의 성장을 그렸다. 제목의 '푸울'은 근대식 수영장(pool)을 가리키는 말로, 낯선 세계와 처음 마주한 소녀의 설렘이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줄거리

 

 주인공 하도란은 월미도에서 나고 자란 열다섯 살 소녀다. 바다를 놀이터 삼아 헤엄치며 자란 도란은 어느 날 물에 빠진 또래 소녀 규옥을 구하게 된다. 규옥은 자신이 '푸울'에서만 수영을 해 보았다며, 경성 수영장에 오면 꼭 자신을 찾으라는 말을 남긴다. 한 달 뒤 오빠를 따라 경성으로 올라온 도란은 경성 수영장 앞에서 규옥과 우연히 재회하고, 난생처음 근대식 수영장의 푸른 물을 마주한다.
바다에서 몸으로 익힌 헤엄과 달리 수영장에서는 호흡과 영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도란은 그 낯선 배움 속에서 수영 장학생이 되어 학교에 다니고 정식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는다. 글공부 한번 해 본 적 없던 소녀가 처음으로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 순간이다. 도란은 강습료를 마련하기 위해 설렁탕집에서 일하며 수영 강습회에 등록한다.
그러나 길은 순탄하지 않다. 여자가 무슨 수영이냐는 부모님의 편견, 오빠의 완강한 반대, 강습회원들의 냉랭한 견제가 차례로 도란을 가로막는다. 그런 도란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이 경수다. 경수는 밤마다 몰래 수영장 문을 열어 주고, 도란은 아무도 없는 밤의 물속에서 시대와 출신,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해방감을 맛본다.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경수 역시 수영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도란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이후 도란은 대회에 나가 연이어 우승하며 실력을 증명하고, 마침내 장학생이 될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그 기회에는 뜻밖의 조건이 따라붙고, 도란은 보장된 성공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중대한 선택 앞에 선다. 도란이 어떤 길을 택하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권한다.

 

배경 및 설정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3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다. 공간은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 경성 한복판의 수영장으로 옮겨 간다. 월미도의 바다가 도란이 몸으로 익힌 자유로운 헤엄의 공간이라면, 경성 수영장은 규칙과 영법, 타인의 시선과 편견이 공존하는 근대의 공간이다. 이 두 공간의 대비가 작품을 떠받치는 큰 축이다.
근대식 수영장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문물이었고, 여성이 운동 경기에 나서는 일은 여전히 낯설게 여겨지던 시기였다. 작가는 경성 거리와 수영장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도 거창한 역사적 사명 대신 한 평범한 청소년의 꿈과 도전에 초점을 맞춘다. 「푸울에 데뷔하다」, 「평영 에이스」, 「오직 나만의 푸울」, 「삼킨 물의 쓸모」처럼 수영과 물에서 길어 올린 장 제목들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도란의 성장을 한 걸음씩 보여 준다.

 

총평

 

『푸울에 풍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시대를 배경으로 삼되 시대에 짓눌리지 않는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저항과 희생, 역사적 사명 같은 무거운 주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대한 사건의 한복판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 낸 평범한 소녀의 일상과 꿈에 시선을 둔다. 도란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소박하고 간절한 마음이다. 그 단순한 바람이 시대의 벽 앞에서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작가는 오히려 그 시대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혼란과 탐색의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에게 역사적 사명까지 지우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려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다.
수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돋보인다. 물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도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도란은 거센 반대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가라앉지 않고, 자신만이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물결을 이어 가며 삶을 바꾸어 나간다. 눈앞의 현실을 단숨에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의 발차기와 한 바퀴의 왕복이 쌓이면 어느새 멀리 나아가 있다는 사실은 수영과 삶이 꼭 닮아 있음을 일깨운다. 「삼킨 물의 쓸모」라는 장 제목에서도 실패와 시련마저 성장의 재료로 바라보는 시선이 엿보인다.
밤의 수영장 장면이 지니는 연대의 의미 또한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도란과 경수가 나누는 시간은 서로 다른 이유로 억눌려 살던 두 사람이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는 안식의 시간이다. 거창한 말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서로의 순수한 열정이 서로를 위로하는 이 장면은, 누군가의 묵묵한 응원이 꿈을 지켜 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에 가족, 경쟁자, 조력자 등 주변 인물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주어져 있어, 도란이 그들과 부딪치고 화해하며 한 뼘씩 자라는 과정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장된 성공이 눈앞에 있더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도란이 내리는 선택은 일제 강점기라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치열한 경쟁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흔들리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그대로 닿는다. 결과와 스펙이 중시되는 지금, 성공으로 가는 길을 앞뒤 가리지 않고 좇기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나답게 살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값진지를 묻는 이 책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 독자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심사 위원단이 세련된 감각과 높은 가독성, 그리고 다른 역사물과 구별되는 차별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몰입도가 높다는 평가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와 생동감 있는 시대 묘사가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만든다. 역사물이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작품이며, 국어 교과의 성장과 문학 단원과도 연계되어 학생들의 독서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결국 『푸울에 풍덩』은 꿈을 향해 처음 물에 뛰어드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망설임 끝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이미 오래 헤엄쳐 지친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걷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를 건넨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분, 담백하면서도 벅찬 성장 서사를 좋아하는 분, 청소년 자녀와 함께 읽을 책을 찾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가슴 한쪽이 물결처럼 찰랑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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