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이야기는 런던에서 온 신사 록우드가 요크셔 외딴 지역의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세 얻어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이웃인 히스클리프의 저택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했다가 불친절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놀란다. 이후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하녀 넬리 딘에게 저택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며, 소설은 그녀의 입을 빌려 수십 년에 걸친 두 집안의 사연을 펼쳐 보인다.
사건의 발단은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가 리버풀에서 데려온 집 없는 아이 히스클리프였다. 히스클리프는 주인의 딸 캐서린과 친밀하게 자라며 서로에게 깊이 얽매이지만, 아버지가 죽고 오빠 힌들리가 집안을 물려받으면서 히스클리프는 하인처럼 학대받는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신분과 안락한 삶을 택해 이웃 가문의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히스클리프는 집을 떠났다가 몇 해 뒤 부유한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에게 치밀한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는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야기는 두 집안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따라 이어진다.
배경과 설정
『폭풍의 언덕』은 1847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당시 '엘리스 벨'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이 소설을 발표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같은 시기에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 소설을 발표한 이듬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녀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 되었다.
배경은 영국 북부 요크셔의 거친 황무지다. 바람이 쉼 없이 몰아치는 벌판과 외딴 두 저택은 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닮아있다. 소설은 록우드의 시선과 넬리의 회상이라는 이중 액자 구조를 취하고 있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사건이 걸러져 전해지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 준다. 이 구조 덕분에 독자는 히스클리프를 어떤 하나의 틀로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된다.
영화화 정보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193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로렌스 올리비에와 머얼 오베론을 주연으로 제작한 흑백 영화가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92년과 2011년에도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 다만 상당수의 영화가 원작의 2세대 이야기를 생략하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각색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영화만 본 독자는 원작이 훨씬 더 어둡고 복잡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총평
『폭풍의 언덕』은 흔히 '고전 연애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그 이름이 얼마나 부족한 설명인지 알게 된다. 이 작품은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상처, 분노와 복수가 뒤엉킨 격렬한 감정의 기록에 가깝다. 독자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관계를 지켜보며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파괴적이고, 파괴라 부르기엔 너무 절실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물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는 점이다. 히스클리프는 학대받은 아이였기에 동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성인이 된 그가 행하는 복수는 잔인하고 집요하다. 캐서린 또한 사랑에 솔직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외면한 인물이다. 작가는 누구도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하지 않으며,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그리고 읽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작품이 된다.
또한 소설의 문체와 구성도 오래도록 남는다. 거칠고 황량한 자연 묘사는 인물들의 마음속 폭풍과 겹쳐 지며 작품 전체에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액자식 구조 속에서 넬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때로 편파적이고 불완전하게 느껴지는데, 이 지점이 오히려 이야기에 현실감과 긴장감을 더한다. 세상이 하나의 진실로 설명되지 않듯, 이 소설 역시 하나의 해석으로 닫히지 않는다.
복수 이야기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점도 인상 깊다. 상처가 상처를 낳고 증오가 대물림되는 과정을 보여준 뒤, 작가는 비로소 다음 세대의 인물들을 통해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을 은근히 비춘다. 파괴적인 이야기 끝에 놓인 이 조용한 희망이 소설을 단순한 비극 이상의 작품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실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인물들의 이름이 비슷하게 반복되어 헷갈리기 쉽고, 감정이 과열된 장면이 이어져 중간에 숨이 가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낸 독자에게는 다른 소설에서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출간 당시에는 지나치게 거칠고 충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때로는 스스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소설이다.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 두꺼운 책 한 권을 붙들고 이 황량한 벌판 위를 걸어 보기를 권한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한 편의 폭풍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