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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줄거리, 배경 설정, 뮤지컬, 총평

by charlottemj 2026. 10. 1.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1인칭 시점으로 정면에서 파고든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입니다. 『7년의 밤』, 『28』을 잇는 '악의 3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악인을 멀리서 관찰하는 대신 악인 그 자체가 되어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줍니다.

 

줄거리

 

 수영 선수였던 한유진은 어린 시절 가족 여행 중 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은 후,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경기 도중 발작을 일으킨 이후로 약을 몰래 끊어버리고, 가끔 밤에 몰래 외출하는 것으로 억눌린 무언가를 달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유진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깨어나고,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자신이 그 밤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유진은, 어머니를 죽인 진범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건의 실마리를 쫓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모,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의형제처럼 지내온 유일한 친구 김해진과의 관계가 조금씩 균열을 드러내고, 유진 자신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진실들이 하나둘 밝혀집니다. 단 사흘 동안 벌어지는 이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유진이 과연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정말 어머니를 죽였는지를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 채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배경 설정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서술 시점입니다. 이야기는 철저히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그는 자신의 폭력성과 결핍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논리적이고 침착한 어조로 사건을 설명합니다. 독자는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인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면서, 도덕적 판단 기준이 흔들리는 기묘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가는 유진을 특별하고 예외적인 괴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진의 사고방식과 논리를 매우 인간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면서, '악은 유전자 안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며 누구나 그 씨앗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주제 의식을 드러냅니다. 수영이라는 극한의 신체 경쟁 스포츠,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 숨겨진 폭력을 교차시키며, 소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대화 정보

 

『종의 기원』은 영화나 드라마 대신 2022년 12월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동명의 뮤지컬로 먼저 관객을 만났습니다. 사이코패스 한유진 역은 박규원, 유승현, 기세중, 니엘, 백동현, 박상혁 등 여러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올랐고, 유진의 의형제 김해진 역은 하동연 등이 맡았습니다. 원작의 긴장감 넘치는 1인칭 서술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했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총평

 

『종의 기원』은 읽는 내내 불편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소설입니다. 살인자의 내면에 이입하게 만드는 서술 방식은 도덕적으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노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악을 저 멀리 있는 낯선 존재로 밀어내는 대신, 우리 안에도 존재할 수 있는 어두운 본성으로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빠른 전개와 치밀한 구성 덕분에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확실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단순한 오락 이상의 찜찜함과 여운이 남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 혹은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이끄는 이야기에 몰입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정유정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세 번이나 완전히 부수고 다시 썼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만큼 공을 들인 서사는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일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가장 날카로운 형태로 전달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앞서 나온 『7년의 밤』, 『28』과 이어서 읽으면 정유정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악'이라는 주제가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심화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년의 밤』이 악과 마주한 인물들의 관계를 다루고, 『28』이 재난 속 인간 군상을 통해 악을 조명했다면, 『종의 기원』은 그 악을 아예 서술자의 자리에 앉혀 독자를 가장 가까이서 대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완결편다운 무게를 지닙니다. 세 작품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이 작가의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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