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지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서사시다.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일리아스』와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전쟁이 끝난 뒤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긴 여정을 그린다. 약 2,7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오늘날의 소설과 영화,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의 원형으로 남아 있어, 고전 읽기를 시작하려는 독자에게 빠지지 않고 추천되는 책이다.

줄거리
이야기는 트로이가 함락되고 십 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목마 계책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의 영웅이지만, 신들의 노여움을 사 십 년째 바다를 떠돌고 있다. 한편 이타카에서는 그가 죽었다고 여긴 수많은 구혼자가 궁전에 눌러앉아 재산을 축내며 아내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강요한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길을 떠나고, 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풀려나 다시 항해에 나선다.
오디세우스가 들려주는 지난 모험담은 이 작품의 백미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아무도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그를 속이고 탈출하는 장면,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바다를 지나는 장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마녀 키르케와의 만남, 저승 세계 방문,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사이의 항해가 이어진다. 그는 동료를 모두 잃고 홀로 이타카에 돌아온 뒤, 거지로 변장하여 궁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들과 힘을 합쳐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오랜 시험 끝에 아내와 재회하며 가정을 되찾는다.
배경과 설정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12세기경 트로이 전쟁 직후의 지중해 세계다. 다만 실제로 작품이 구전되다가 문자로 정리된 시기는 기원전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인지, 한 사람의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으며, 이를 '호메로스 문제'라고 부른다.
이 세계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삶에 직접 개입한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돕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아들 폴리페모스가 눈을 잃은 일로 그를 끈질기게 방해한다. 또한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크세니아'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 작품에서 손님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이는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이는 응징을 당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도 이런 가치관의 반영이다. 작품은 총 24권, 약 1만 2천 행에 이르는 운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산문체와 운문체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 있다.
영상화 및 재해석
『오디세이아』는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거듭 재해석되었다. 1997년에는 TV 미니시리즈 〈오디세이〉가 제작되어 원작의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하게 옮겼고, 2004년의 영화 〈트로이〉는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하여 같은 세계를 다루었다. 코엔 형제의 2000년작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는 대공황기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유머러스하게 차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에서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이 서사시를 현대 더블린의 하루로 옮겨 놓았으며,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는 페넬로페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다시 쓴 작품이다.
총평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승부하는 영웅이 아니다. 그의 무기는 꾀와 인내, 그리고 상황에 맞게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는 능력이다. 폴리페모스를 속인 이름의 재치나 거지로 변장한 인내는 힘이 아니라 지혜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존 능력'과 '회복 탄력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귀향'이라는 주제다.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는 영생을 약속하는 칼립소의 제안마저 마다하고 필멸의 인간으로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길 선택한다. 영원한 삶과 완벽한 안락보다 평범한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 곁을 택하는 이 결단은 읽는 이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모험이 화려할수록 그 끝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집의 의미가 더욱 커지는 구성 또한 절묘하다.
인물 면에서는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페넬로페는 수의를 낮에 짜고 밤에 푸는 계략으로 구혼자들을 속이며 이십 년을 버틴 인물로, 기다리는 사람이 곧 수동적인 사람은 아님을 보여 준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던 소년에서 스스로 결단하는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겪는다. 이처럼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시련을 이겨 내며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한다.
물론 낯선 신들의 이름과 반복되는 수식어, 긴 족보와 제의 장면은 현대의 독자에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는 구전 문학의 흔적이자 이 작품이 지닌 고유한 리듬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완독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키클롭스와 세이렌, 키르케의 에피소드처럼 익숙한 장면부터 읽어 나가도 충분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번역본에 따라 문체의 결이 크게 다르므로, 서점에서 몇 쪽을 먼저 읽어 보고 자신에게 맞는 판본을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국 『오디세이아』는 인간이 길을 잃고, 시련을 겪고, 그럼에도 돌아갈 곳을 향해 나아간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들려주는 작품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읽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바다를 건너 저마다의 이타카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의 첫걸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다시 펼쳐 보는 한 권으로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