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는 100년 전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떠난 '사진신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인 이민 여성사의 한 페이지를 소설로 되살려냅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이금이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자료를 살펴보던 중,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앳된 얼굴의 세 여성이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승자와 남성 중심으로 쓰인 주류 역사에서 비켜나 있던 이 여성들의 존재가 작가의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잡았고, 그 사진 한 장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줄거리
주인공 버들은 일제 강점기, 경상도 김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열여덟 살 소녀입니다. 의병 활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 홀로 버들과 남동생들을 키워 왔고, 양반 신분임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들처럼 학교에 다니거나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이런 버들에게 하와이로 시집간다는 것은 곧 낯선 세상으로 향하는 인생의 도박이었습니다. 신랑이 될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 채, 오직 사진 한 장만을 보고 결혼을 결심한 뒤 태평양을 건너는 것이니까요. 소설은 버들뿐 아니라 신분과 사연이 저마다 다른 여러 여성들의 삶을 함께 조명하며, 이들이 하와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고된 노동과 현지인들의 냉대, 독립운동을 둘러싼 갈등, 외로움과 설움 속에서도 여성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남습니다. 결국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작은 호의와 환대라는 것이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역사적 배경 – 하와이 '사진신부'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진신부'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1900년대 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노동자 중에는 결혼 적령기를 놓친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낯선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금기시되던 시절이라 이들은 대부분 홀아비로 지내야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사진결혼이었습니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중매인을 통해 약 700여 명의 조선 여성들이 사진 한 장만 보고 결혼을 결심한 뒤 하와이로 향했습니다. 이들이 하와이행을 택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종교적 이유로, 혹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는 유학에 가까운 마음으로 떠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주 초기 한인 여성들은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남성 중심의 한인 사회와 가부장적 가족 형태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동시에 강한 생활력과 높은 교육열로 하와이에 한인 공동체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진신부들은 단순히 이민자 아내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여성단체를 조직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대한부인구제회 같은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등 하와이 한인 사회의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소설 속 버들과 동료들의 이야기는 이런 실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개인의 서사를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려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평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가장 큰 미덕은 '역사의 그늘에 있던 여성들'에게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돌려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하와이 이민사는 주로 노동자 남성들의 서사로 다뤄져 왔지만, 이 소설은 사진 한 장에 인생을 걸어야 했던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 역사를 다시 씁니다.
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한 줄로 기록되어 기억에 없던 역사적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사진 한장에 자신의 반려자를 선택하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남의 나라에 간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인상 깊었던 것은 인물들이 겪는 고난이 결코 가볍게 그려지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여성들 간의 연대와 우정이 이야기를 따뜻하게 이끌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알로하'라는 단어가 배려, 조화, 겸손, 인내를 뜻하는 하와이어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 역시 환대와 선의입니다. 인간의 선함을 믿는 작가의 시선이 소설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역사 교양서처럼 정보를 나열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촘촘히 따라가며 시대를 체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사소설로서도, 성장소설로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만나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참고사항으로 사진 신부와 관련하여 함께 보면 좋은 사진신부 관련 다큐멘터리가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신부': 미주한인재단 하와이와 KBFD TV, 한국 제작사 제이원더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촬영 당시 103세였던 사진신부 2세대 메리 자보를 비롯해 에스터 권, 로버트 고, 리도나 휴 등이 출연해 이민 1세대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2023년 휴스턴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KBS 다큐온 '하와이의 사진신부'(2022년 8월 19일 방영): 실존 사진신부였던 천연희 여사의 삶을 조명한 국내 방송 다큐멘터리로, 소설 속 인물들의 실제 모델이 된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진영 감독 '하와이 연가': 사진신부를 포함한 하와이 한인 이민 1세대의 삶과 그 후손들의 기억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후손 음악가들의 연주를 통해 선조를 추모하는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소설을 먼저 읽은 뒤 이런 다큐멘터리를 함께 찾아보면, 허구의 인물인 버들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훨씬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