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가 1870년대에 쓴 『안나 카레니나』는 『전쟁과 평화』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이다. 흔히 불륜을 다룬 비극적 연애담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책을 펼치면 사랑과 결혼, 가족, 신앙, 사회 변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전반을 폭넓게 탐구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읽히며 '가장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줄거리
소설은 모스크바에 사는 오블론스키 공작의 불륜으로 가정이 흔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누이 안나가 올케 돌리를 위로하고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움직인다. 안나는 고위 관료인 남편 카레닌과 어린 아들을 둔, 품위 있고 총명한 상류 사회의 여성이다.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안나는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를 처음 만난다. 두 사람은 무도회에서 다시 마주치고, 억누르려 할수록 커지는 감정에 서로 이끌린다. 안나는 결국 사교계의 시선과 남편의 냉담함 속에서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사교계는 그녀를 외면하고, 아들과 떨어져야 하며, 사랑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점점 그녀를 잠식해 간다.
한편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순박한 지주 레빈이 있다. 그는 키티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고,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버림받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레빈은 농촌에서 땅을 일구며 삶의 의미와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키티와 마침내 결혼해 가정을 이룬다. 파국으로 향하는 안나의 이야기와 모색 끝에 안정을 찾아가는 레빈의 이야기가 대조를 이루며 소설은 끝까지 나아간다.
배경과 설정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다. 1861년 농노 해방령 이후 귀족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철도와 산업화 같은 새로운 문물이 밀려들던 격변기였다. 무대는 화려한 사교계의 중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전통적 분위기의 모스크바, 그리고 광활한 농촌 영지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철도는 상징적인 장치로 쓰인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첫 만남이 기차역에서 이루어지고, 그 자리에서 일어난 사고가 훗날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로 읽힌다. 또한 당시 상류 사회는 겉으로는 도덕과 체면을 중시하면서도 남성의 불륜에는 관대하고 여성의 일탈에는 가혹한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시대의 모순을 인물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잡지에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영화화 정보
『안나 카레니나』는 수없이 영상화된 작품이다. 1935년 그레타 가르보가 안나를 연기한 할리우드 영화가 널리 알려졌고, 1948년에는 비비안 리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1997년에는 소피 마르소가 안나 역을 맡았으며, 2012년에는 조 라이트 감독이 키이라 나이틀리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를 선보였다. 이 2012년 작품은 연극 무대 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독특한 연출과 화려한 의상으로 주목받았고,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하였다. 이 밖에도 드라마, 발레, 연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거듭 재해석되며 시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
총평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인물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시선이 놀라울 만큼 입체적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에는 선악이 분명한 인물이 거의 없다. 안나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질투와 집착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인물이기도 하다. 카레닌은 냉정하고 답답한 남편처럼 보이다가도 아내의 배신 앞에서 고뇌하는 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브론스키 역시 단순한 유혹자가 아니라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이다. 누구 하나 쉽게 비난할 수 없도록 인물을 그려 낸 힘이 이 작품을 오랫동안 살아 있게 만든다.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안나와 레빈이라는 두 갈래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대비다. 안나의 이야기가 열정과 파멸을 보여준다면, 레빈의 이야기는 일상과 노동, 가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따로 놀듯 느껴지지만, 읽을수록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물음이다.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내려 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두 사람의 삶을 나란히 바라보며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분량이 방대하고 등장인물이 많으며 러시아식 이름과 호칭이 낯설어 초반에는 다소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 인물들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책장을 덮기 어렵게 된다. 특히 안나가 질투와 고독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가는 후반부는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질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녀의 선택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독자는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은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안나의 열정과 비극에 마음이 쏠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 레빈의 고민이나 카레닌의 처지, 돌리의 고단한 결혼 생활이 더 깊이 와닿는다. 같은 책이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힌다는 것은 고전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사랑과 도덕, 욕망과 책임, 개인과 사회라는 오래된 주제를 이토록 섬세하고 폭넓게 다룬 작품은 흔치 않다.
결국 『안나 카레니나』는 한 여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삶 전체를 비추는 소설이다. 방대한 분량이 부담스럽더라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고전 입문을 고민하는 독자는 물론, 이미 읽었던 독자에게도 다시 펼쳐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