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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수록 내용, 배경과 작가 소개, 총평

by charlottemj 2026. 10. 25.

 수필이라는 장르에서 피천득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기준처럼 놓여 있다. 짧고 단정한 문장으로 일상의 한 귀퉁이를 비추고, 읽는 이의 마음에 조용한 물결을 남기는 글.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바로 그 피천득의 수필을 새롭게 엮어 선보인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아련한 여운이 남는 이 책을 이번 글에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수록 내용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으며, 기존 수필집 『인연』을 바탕으로 자식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들을 새롭게 더한 구성이다. 수필집이므로 하나로 이어지는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분명하다. 바로 스쳐 간 사람들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다.
표제작의 바탕이 된 「인연」은 작가가 열일곱 살 무렵 도쿄에서 신세를 지게 된 집의 어린 딸 아사코와의 이야기다. 처음 만났을 때 아사코는 오빠를 따르듯 작가를 따랐고, 아침에 꺾은 꽃을 책상 위에 꽂아 두는 다정한 소녀였다. 두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세 번 만났으나, 작가는 마지막 만남을 두고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세월이 흘러 달라진 모습으로 마주한 두 사람은 절만 몇 번 주고받은 채 악수도 없이 헤어진다.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장면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 밖에도 책에는 어린 나이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다정하고 기품이 넘쳤던 어머니와의 이별과 그를 귀여워하시던 외삼촌 할아버지와의 작별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새해의 소박한 결심을 적은 「신춘」처럼 가볍고 맑은 글도 함께 실려 있어, 슬픔과 기쁨이 한 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새로 더해진 것이 아들에게 쓴 편지들이다. 십팔 년 정든 집을 떠나며 자식들의 성장을 돌아보는 글이 대표적이며, 담담한 문장 속에 부모의 사랑이 깊게 배어 있다.

 

배경 및 작가 소개

 

 피천득은 1910년에 태어나 2007년에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수필가, 영문학자다. 서울대 영문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열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돌아갈 수 없지만 늘 위안과 희망이 되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이 이른 상실의 경험이 그의 글에 은은한 비애와 그리움의 빛깔을 드리웠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20세기였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 거창한 역사를 정면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작은 풍경과 사람들, 그 안에서 피어난 감정을 조용히 기록한다. 이번 책이 세계문학전집이라는 틀 안에서 다시 읽힌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한국 근대 수필의 정수가 세계문학의 좌표 안에서 다시 읽힐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총평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단정함'이었다. 피천득의 문장은 꾸밈이 많지 않다. 어려운 단어도, 힘주어 던지는 주장도 없다. 그런데도 한 편을 읽고 나면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거나, 어딘가가 아릿해진다. 그는 수필을 마음의 산책이라 불렀는데, 이 책을 읽는 일이 꼭 그런 산책과 같았다. 서두를 필요도, 결론을 찾을 필요도 없이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오래전 잊고 지냈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인연'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흔히 인연을 이어지고 깊어지는 관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피천득은 만나지 못하는 인연,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던 인연까지도 인연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아사코와의 마지막 만남이 그렇다. 재회의 기쁨 대신 서먹함만 남았고, 그는 그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쓸쓸함마저 글로 옮겨 삶 안에 간직한다. 사라진 관계를 문장으로 붙들어 두는 일이야말로 수필이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판본의 가장 큰 미덕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수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피천득 하면 딸에 대한 애정이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딸에 가려져 있던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피천득의 또 다른 매력을 조명한다는 소개처럼 이 편지들은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표현은 절제되어 있으나 오히려 그 절제 때문에 사랑이 더 또렷하게 전해진다. 수필 속의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면, 편지 속의 작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다. 두 시선이 한 권에 함께 담겨 피천득이라는 사람이 한결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이 책은 빠르게 소비되는 글에 익숙한 오늘의 독자에게 속도를 늦추는 법을 일깨운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문장이 넘치는 시대에, 사소한 일상을 애정으로 바라보는 글은 그 자체로 귀한 쉼표가 된다. 일상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큰 것들을 품겠느냐는 한 서평의 문장처럼, 이 책은 작고 평범한 순간에 눈길을 주는 연습을 하게 한다. 새해 첫 달을 봄이라 여기는 「신춘」의 마음가짐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극적인 사건이나 강한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미 『인연』을 읽은 독자라면 겹치는 글이 많아 새로움이 덜할 수도 있다. 다만 새로 실린 편지들과 새 판본의 단정한 구성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 준다. 수필 특유의 시대적 배경이나 표현이 요즘의 감각과 다르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 낯섦마저 한 시대를 건너온 글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이별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만남에 관한 책이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문장은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 뒤에는 그만큼 소중히 여겼던 시간이 있다. 스쳐 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몽글해지는 저녁, 혹은 조용히 한 해를 시작하고 싶은 아침에 곁에 두고 한 편씩 꺼내 읽기를 권한다. 읽고 나면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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