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1987년 일본에서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이른바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장편소설이다. 국내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오랜 세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이후 원제에 가까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기도 하였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남겨진 자의 성장을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하루키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현실적인 연애소설로 꼽힌다.

줄거리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 도오루는 독일 함부르크행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 선율을 듣다가 격한 혼란에 빠지며 십수 년 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의 기억은 1960년대 후반, 스무 살 무렵의 도쿄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 시절 와타나베에게는 단짝 친구 기즈키가 있었고, 기즈키에게는 연인 나오코가 있었다. 그러나 기즈키가 열일곱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세 사람의 균형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진다.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와타나베는 우연히 나오코와 재회하고, 두 사람은 도쿄 거리를 말없이 걸으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나오코는 기즈키의 죽음이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점점 불안정해지고, 스무 번째 생일 이후 홀연히 종적을 감춘 뒤 교토 산속의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와타나베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요양원을 찾아가 나오코와 그녀의 룸메이트 레이코를 만난다. 한편 도쿄에서는 활기차고 솔직한 같은 대학 학생 미도리를 알게 되어 마음이 흔들린다. 나오코를 향한 책임감과 미도리에게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와타나베는 끝내 나오코의 비극적인 소식을 맞이하고, 깊은 상실감 속에서 방황한다. 레이코와의 재회 이후 그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지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감각 속에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배경과 설정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8년에서 1970년 사이의 도쿄로, 일본 사회가 학생운동의 열기에 휩싸였던 시기이다. 대학은 봉쇄되고 거리에는 구호가 넘쳐났지만, 와타나베는 그 격렬한 흐름에서 한 발 떨어진 채 기숙사와 아르바이트, 독서와 음악으로 일상을 이어 간다. 작가가 다닌 와세다 대학의 분위기가 투영된 이 시대의 공기는 거대한 이념이 흔들리던 시기에 오히려 개인의 내면이 더욱 쓸쓸하게 드러나는 무대가 된다.
작품 전체는 서른일곱 살의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1인칭 구조로 전개된다. 제목이기도 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로 기능하며, 나오코가 즐겨 청하는 곡으로 등장해 작품 전반에 아련한 정서를 드리운다. 또한 소설은 죽음이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늘 곁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영화화 정보
『상실의 시대』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연출은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로 알려진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훙이 맡았으며, 와타나베 역에 마츠야마 켄이치, 나오코 역에 키쿠치 린코, 미도리 역에 미즈하라 키코가 출연하였다. 음악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아 영상의 쓸쓸한 정서를 더했고,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한 만큼 인물의 내면 묘사는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도 있으나,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총평
『상실의 시대』는 한마디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죽음은 극적인 사건으로 소비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오랫동안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으로 그려진다. 기즈키의 죽음은 와타나베와 나오코 두 사람 모두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끝내 서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 지점이 작품의 가장 아프고도 현실적인 대목이다. 사랑이 있다고 해서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사랑조차 상실을 막아 주지 못한다는 냉정한 진실을 하루키는 과장 없이 담담하게 보여 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나오코와 미도리의 대비다. 나오코가 과거와 죽음의 그림자에 붙들린 인물이라면, 미도리는 현재의 생명력과 삶의 활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와타나베는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이는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과거에 머물 것인가,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로 읽힌다. 결말에서 와타나베가 확신하지 못한 채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상실을 겪은 사람이 곧바로 일어설 수는 없으며 긴 방황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이면서도 묘하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체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하루키 소설 가운데 가장 단정하고 서정적이다. 환상적인 설정이 중심이 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리얼리즘에 가깝게 쓰였기에 하루키 입문작으로 권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건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 음악과 일상의 사소한 디테일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만 작품 속에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비교적 직접적인 성애 묘사가 등장하고, 인물들의 선택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청춘의 공허와 상처, 그리고 애도의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두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스무 살 무렵에는 와타나베의 외로움과 방황에 마음이 기울고,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 남겨진 자가 평생 짊어지는 기억의 무게가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거나 인생의 한 시기를 지나 보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를 분명 느끼게 될 것이다. 쓸쓸함이 깊어 가는 이 계절, 한 번쯤 펼쳐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