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몽환의 아이』는 현직 내과 의사이기도 한 치넨 미키토가 의학 미스터리에 판타지를 결합한 장편이다. 일본어 원제 《ムゲンのi》
를 옮긴 작품으로 보고 정리했으며, 상·하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신경 정신 연구소 부속병원에서 일하는 스물여덟 살의 의사 시키나 아이다. 그녀는 어느 날 원인 모를 병 ‘이레스’에 걸린 환자 세 명을 동시에 맡게 된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깊은 잠에 빠진 채 깨어나지 못한다. 검사를 해도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고 치료법도 없어서, 아이는 의학의 한계 앞에서 막막해한다.
그때 오키나와의 무녀 ‘유타’인 할머니가 뜻밖의 조언을 건넨다. 환자의 꿈과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 영혼을 구하는 의식, 즉 ‘마부이구미’를 하면 환자가 깨어난다는 것이다. 아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조언을 따라 환자들의 꿈속으로 뛰어든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기 영혼의 분신인 토끼 고양이 ‘쿠쿠루’와 함께 환자들이 마음속에 가둬 둔 상처와 마주한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꿈은 각기 다른 풍경과 사연을 지니고 있고, 아이는 그 안에서 수수께끼를 풀어 가며 잠든 영혼을 현실로 이끌어 낸다. 이야기가 나아갈수록 병의 정체와 아이 자신의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배경과 설정
이 작품은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전개된다. 하나는 의료 현장이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고민하는 병원의 장면은 현직 의사인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만큼 사실적이다. 다른 하나는 환자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꿈의 세계다. 이곳에서는 현실의 논리가 통하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기억이 풍경과 사건으로 모습을 바꾼다. 의학이라는 과학의 언어와 꿈이라는 상징의 언어가 한 작품 안에서 맞물리는 것이 이 소설의 뼈대다.
여기에 오키나와의 민간 신앙이 더해진다. 작가 치넨 미키토는 오키나와 출신이며, 주인공 역시 오키나와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혼을 뜻하는 ‘마부이’를 몸에 되돌리는 의식인 마부이구미, 신과 인간을 잇는 무녀 유타는 모두 오키나와 고유의 문화다. 의사 주인공이 과학으로 풀지 못한 문제를 고향의 민속적 지혜로 풀어 간다는 설정은 이 작품만의 개성을 만든다. 제목의 ‘i’는 주인공의 이름 ‘아이’와 겹쳐 읽을 수 있어서, 이 이야기가 결국 한 사람의 내면을 향한다는 느낌도 준다.
총평
『몽환의 아이』는 장르를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병원이 무대이고 원인 불명의 병을 다루니 의학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곧 꿈속 모험이라는 판타지로 넘어간다. 거기에 환자들의 사연을 따라가는 휴먼 드라마의 결이 더해진다. 이 세 가지가 한 작품에 공존하다 보니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정통 의학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는 판타지의 비중에 놀랄 수 있고,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는 병원 장면의 현실감에서 오히려 신선함을 느낄 것이다. 다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낯섦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치료’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의사는 흔히 몸의 병을 고치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이 작품은 병의 뿌리가 마음의 상처에 닿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환자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몸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로 보는 설정은 환상적이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그 문을 억지로 열지 않고 곁에서 함께 걸어 들어가 상처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 진짜 치료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꿈속 여정을 통해 전해진다.
주인공 아이가 환자들만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녀는 타인의 영혼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상처와도 대면한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아직 치유되지 못한 한 사람으로 그려지기에 캐릭터에 입체감이 생긴다.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라 흔들리고 망설이는 인물이 환자들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은 치유가 일방향이 아니라 서로를 구하는 일임을 보여 준다. 쿠쿠루라는 귀여운 분신이 곁을 지키는 덕분에 무거운 소재도 지나치게 어둡지 않게 읽힌다.
작가가 의사라는 사실은 이 작품의 또 다른 강점이다. 병원의 풍경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이 환상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받쳐 준다. 비현실적인 설정이 공중에 뜨지 않고 현실의 고민 위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의료 미스터리를 써 온 작가가 장르의 경계를 넓히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분량이 길고 세계관이 복잡해서 초반에는 설정을 따라가는 데 에너지가 든다는 것이다. 꿈의 세계가 여러 번 바뀌는 만큼 속도감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호흡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쌓일수록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모이고,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평이 많다.
결국 『몽환의 아이』는 미스터리의 재미와 판타지의 상상력,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을 함께 원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잠든 영혼을 깨우는 일이란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남는다. 깊어 가는 가을밤에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