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고령화 가족』은 마흔을 앞둔 영화감독 오인모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데뷔작이 흥행에 참패한 뒤 아내와도 헤어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처지가 되어, 칠십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그곳은 평온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형 한모가 백수 건달로 눌러앉아 있었고, 이어서 두 번이나 이혼한 여동생 미연이 사춘기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온다.
이렇게 사십 대의 다 큰 자식들과 손녀까지 한 지붕 아래 모이면서 집안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서로의 처지를 비웃고, 돈 문제로 다투고, 지난 상처를 들추며 싸우다가도 어머니가 차려 낸 밥상 앞에서는 어느새 한자리에 둘러앉는다. 소설은 이 소란스러운 동거를 따라가며, 실패한 어른들이 서로의 곁에서 조금씩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능청스러운 웃음과 쓸쓸한 여운으로 그려 낸다.
배경과 설정
작품은 200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외환 위기 이후 불안정한 고용이 일상이 되고, 중산층의 꿈이 조금씩 무너지던 시기이다.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결혼 생활이 파탄 난 중년의 자녀가 부모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은 이 시대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고, 작가는 이를 '고령화'라는 제목에 담아 위트 있게 풀어냈다. 여기서 고령화는 노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이만 먹었을 뿐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식 세대의 문제까지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
공간은 어머니의 낡은 집 한 채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 이 좁은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짊어진 인물들이 부딪히기에, 이야기는 연극처럼 밀도 있게 전개된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머니가 끓여 내는 국과 구워 내는 고기는 가족을 다시 묶어 주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며, 거창한 화해의 말보다 한 끼의 밥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영화화 정보
『고령화 가족』은 송해성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2013년에 개봉했다. 윤여정 배우가 어머니를, 박해일 배우가 주인공 인모를, 공효진 배우가 여동생 미연을 연기했고, 윤제문 배우가 형 한모를 맡았다. 이처럼 탄탄한 배우진이 모인 덕분에 가족 구성원 사이의 티격태격하는 호흡이 생생하게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원작의 유머와 따뜻한 정서를 비교적 충실하게 옮기면서도 영상 매체의 특성에 맞게 사건을 압축했다. 반면 소설은 인물들의 속마음과 서술자의 독백이 주는 씁쓸한 웃음이 더 깊게 배어 있다. 영화를 먼저 보았더라도 원작을 읽으면 문장 사이에 숨은 감정의 결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총평
『고령화 가족』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웃었고,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조용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가족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부족하고 한심하다. 돈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그런데도 독자는 이들을 미워하지 못한다. 그들의 못남이 곧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유머 감각이다. 천명관은 인물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 어린 눈물로 포장하지 않고, 능청스러운 입담과 과장된 상황으로 웃음을 길어 올린다. 그 웃음은 가볍지 않다. 웃고 나면 어김없이 씁쓸함이 남고, 그 씁쓸함 속에서 현실의 무게가 선명해진다. 비극과 희극이 한 문장 안에서 맞닿는 이 균형 감각이야말로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다.
또한 이 소설은 '성공'이라는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 일가는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작품은 그들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잔을 채워 주는 순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와도 받아 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를 소설은 담담하게 보여 준다.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이기보다, 자식들의 한심함을 다 알면서도 밥을 차려 내는 현실적이고도 단단한 인물로 그려져 더욱 큰 울림을 남긴다.
다만 인물들의 말투와 행동이 거칠고, 가족 간의 갈등이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불편함이 있기에 이야기의 진정성이 살아난다.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흔히 빠지기 쉬운 감상주의를 피하고,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보여 주려는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독립하지 못한 자식이든, 그런 자식을 둔 부모이든, 혹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복잡하게 느껴지는 누구든 이 책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읽고 나면 오랜만에 가족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 보고 싶어지는 소설, 『고령화 가족』은 바로 그런 책이다.